실수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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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의 미학?
  • 남해타임즈
  • 승인 2016.09.27 12:15
  • 호수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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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관호 칼럼
서 관 호본지 논설위원장<어린이시조나라>발행인

나는 문인이다. 어설픈 시조를 써서 독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적잖게 줄 것이다. 신문에 칼럼을 10년이나 써서 잘못을 지적당한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다.

이 같은 나의 행동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던 간에 범죄일까, 실수일까, 아니면 당연한 것일까? 

물론 귀책사유가 장본인의 의도에 따라서도 달라지겠지만 상대방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가령 누구의 잘못을 지적한 칼럼의 경우 지적을 당한 사람은 본인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마음 편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일반 독자들은 후련함을 느끼는 것이니 말이다. 또한 신문의 독자들은 사회와 소통하고 동시대를 호흡하기 위해서 신문을 읽지만 좋은 기사들만 골라서 읽을 수는 없는 까닭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금요일에 우체국에 갔다. 책 한권을 등기로 부쳤는데 우편물을 내밀자마자 담당자가 "빠른 등기로 할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라고 했더니 "월요일에 도착합니다" 라고 말했다. 무심코 부쳐놓고 집에 오다가 생각하니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같은 시내에 가는 것인데 4일 만에 도착한다? 그것이 빠른 등기라고? 빠른 등기는 보통 등기보다 요금도 많지 않은가?` 돈은 더 받고 같은 날 배달해주는 이 같은 행정행태가 공무원의 올바른 직무인가? 이 같은 나의 일처리는 제대로 한 것인가? 누구는 범죄이고, 누구는 실수이고, 누구는 당연한가? 여기서 내가 건덩대서 내가 손해 본 것은 실수지만, 공무원이 관행으로 처리해서 고객에게 피해를 입힌 것과 부당이득을 취한 것은 실수가 아니다. 인지하지 못한 범죄인 것이다. 

사과라는 것은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를 입은 상대방에게 사죄를 구하는 언행이다.

그런데 왕왕 보면 "실수였습니다" 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에도 그렇게 나오기도 한다. 그러니까 `실수`라는 말은 범죄를 합리화하는데 주로 쓰는 말처럼 된 것이다. 이것이 실수의 미학이란 말인가? 물론 자라나는 사람들에게는 실수가 미덕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큰다고 생각하면. 

요즘 학교폭력, 부모학대, 아동학대 등의 사건들이 넘쳐나서 인본이 무너진 사회라는 개탄의 소리가 높다. 이것들은 결국 범죄를 범죄인 줄 모르고 저질러온 만성화된 범죄 심리가 만들어낸 사회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범죄인지, 실수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합리화에 빠진 결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가정교육이고 학교교육이다. 모범을 따라 해서 몸에 배이고, 규범을 지켜서 체질화된 사람, 그것은 가정과 학교가 만드는 것이며, 사회와 국가는 인간을 통제하는 먼 울타리에 불과한 것이다.

우체국 직원은 고객이 다시 와서 항의하지 않을 만큼의 단지 몇 백 원짜리 실수를 한 것이지만, 수많은 공무원들은 거액의 사건들을 관행이라는 미명으로, 혹은 해당 법규의 자의적 해석으로, 혹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서 처리함으로써 선량한, 또는 무지한 백성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텔레비전 신문고만 보더라도.

나에게도 그러한 경험은 적지 않다. 아파트단지의 목욕탕 부지를 팔면서 단지내 복지관에 목욕탕시설이 있는 것을 공지하지 않은 경우, 공공시설용지를 분양하면서 지적정리 후 확정면적을 이전등기해주기로 했는데 지적법상 법면이 포함된다는 것을 고지하지 않은 경우 등이다. 전자는 사업성이 떨어지고, 후자는 불필요한 분양면적이 증가하기도 하고, 건물 위치가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실수라는 말은 본래 부주의로 저지른 잘못인데, 단지 예의에 어긋난 행동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수는 흔히 할 수 있는, 언제나 해도 되는 그런 행동이 아니다. 또한 남에게 가한 위해를 덮는데 사용할 수 있는 멋있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나는 오만과 편견에 빠져 남을 위해하고 있지 않은지, 그것이 나의 수준이고 나의 인격임을 돌아보는 지혜, 누구나 가짐직하다. 실수! 범죄를 덮어두는 덮개쯤으로 생각하는, 실수를 미화하는 잘못은 실수보다 더 큰 잘못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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