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의 함정 확증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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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의 함정 확증편향
  • 남해타임즈
  • 승인 2018.01.18 11:41
  • 호수 5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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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본지 칼럼니스트
남해군상공협의회 사무국장

보지 않으려는 사람만큼 눈 먼 사람 없고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처럼 귀가 먼 사람도 없다.

새로운 문제를 사실을 토대로 이해하기보다 내 의견에 동의하거나 일치하는 정보만을 선택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하다. 자기만의 믿음은 견고해지고 감정은 편하지만 건너편의 것은 보지 못한다. 확증 편향은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집한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에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철저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맹목적인 이념대립으로 무분별하게 편을 가르는 사회현상이 비단 어제 오늘 만의 일은 아니다. 배려나 의무는 뒷전이고 주장만 격화되어 서로가 아슬아슬한 대척점에 서 있는 분위기다. 

이성은 왜곡된 감정의 지배를 받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마주 보는 대화는 공론의 장으로 진입할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지금 쓰여지는 역사가 미래를 향한 비전인데도 갈등과 반목에 사로잡혀 깨어나지 않고 확증편향의 덫에 걸려 자기 논에 물 대기 급급한 실정이다. 

SNS 시대를 맞아 확증 편향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SNS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번갈아 나누는 교호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과의 소통 수단으로 활용하기보다 생각과 행동이 비슷한 사람끼리 뭉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심해 확증편향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 인지적 편향성의 덫에 걸려 자기 논에 물 대기 급급한 실정이다. 담론의 공유를 거절하면 누가 손해인지 생각해 봤는가. 교류의 단절은 의식 흠결을 자초하고 비뚤어진 사고의 감옥에 나를 가두는 일이다. 내로남불의 독선과 오만의 이중적 잣대를 거두어야 한다. 청중에게도 권한은 있다. 맹목적 대립보다 나를 숙려해야 한다. 

사회는 관계와 역할의 그물로 구성되어 있고 사회체계는 개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SNS의 기능과 목적이 다양한 방식의 소통임에도 눈초리의 편견이 두려워 댓글 하나 달기가 망설여지고 좋아요 한 번 누르기가 조심스러울 때도 있다. 단순한 맞장구를 치기에는 팩트와 논리가 맞지 않아 반대 생각의 댓글 잘 못 달았다가는 재앙 같은 말이 돌아오는 경우도 지켜봤다. 

일도양단하지 못하는 필자의 약한 심지를 자책한 때도 있었다. 갈등은 자기주장이 옳다는 언쟁에 여념이 없을 때 많이 일어난다. 사회 갈등도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필요한 것이지만 생각이 다르다고 죽일 듯이 경멸하는 것은 갈등이 아니라 감정 독재이다. 

담론의 공유를 거절하면 누가 손해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교류의 단절은 의식의 흠결을 자초하는 것이고 비뚤어진 사고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이다. 

가치와 생각의 중심이 아니라 내편 네편의 사람중심으로 끌고 가면 소통의 편향을 가져오고 사회분열을 낳는다. 청중에게도 권한은 있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거나 존중하지는 못해도 자신과의 견해 차이에 지나친 격분은 삼가야 한다. 내로남불의 독선과 오만의 이중적 잣대를 이제는 거두어 들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나친 염려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사실이 있다. 즉흥적이고 직관적으로 내 입맛에 맞는 감정만 취했을 때보다 낯설지만 새로운 느낌을 받아들일 때 나에게 오는 편익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인지적 편향성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 사람에게 일어난다. 사실의 편집은 감춰도 빤히 보이는 일이다. 자기 눈을 가리는 함정을 극복하려면 이를 줄여나가야 한다. 인간관계를 중개하고 이를 지탱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확증편향에 대한 경계가 사회의 건강한 공기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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