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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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의 고향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10.06 15:30
  • 호수 8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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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칼럼니스트
이  현  숙칼럼니스트
이 현 숙
칼럼니스트

 주지하다시피 한국 사회가 직면한 초저출산 현상은 외국의 인구학자들도 경고의 목소리를 높일 만큼 심각하다. 게다가 `지방 소멸`은 어느새 일상용어가 되었다. 수도권 쏠림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그 여파가 농어촌을 넘어 중소도시까지 흔들고 있다. 
 지역 간 불균형을 논하지 않더라도 수도권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도권 과밀화의 후폭풍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수도권의 경우 인구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인프라 역시 다방면에서 지속적으로 확충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도권이 안고 있는 만성적인 문제적 상황들이 저절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지방의 사정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인구 유출로 인해 이미 열악한 사회기반시설마저 감축이 불가피하다 보니 생활상의 불편은 불 보듯 훤하다. 일례로 이용객이 감소하면서 경영난에 허덕이던 버스터미널이 문을 닫자 지역민들의 이동권이 제약을 받고 있다. 유사한 상황이 되풀이되면 `지방 공동화(地方 空洞化)`는 필연적인 수순이다. 
 `인구 위기`에 처한 지자체들로서는 청년 인구의 유출 억제와 새로운 인구 유입을 주요 현안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도시인을 대상으로 시골살이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이주민에게 영농 기술을 전수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런데 행정력을 동원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출산지원금과 정주생활지원금을 지원한다고 소기의 목적이 달성될지는 의문이다. 지원금에 홀려 위장 전입하거나 출산장려금만 수령하고 떠나는 사례는 여러 차례 보고되었다. 고육지책으로 5년 내에 집을 팔고 다른 지역으로 주소를 이전하면 지원금을 반납토록 한 지자체도 있다. 
 여하간 행정 관청의 역할은 중요하다. 탁상공론식 정책보다 현장을 발로 뛰며 주민들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조례를 개정하거나 새로 제정해야 한다. 까다로운 민원이라도 융통성을 발휘하여 신속하고 원만하게 처리해 나간다면 지역 구성원들의 신뢰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자발적으로 이주한 외지인이 과도한 규제에 실망하여 도시로 회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지방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지방의 성장과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줄로 안다. 이에 해결 방안의 하나로 `평준화가 아닌 차별화`를 제안한다. 단순히 타 시군구를 따라하는 닮은꼴 정책은 인구 유입은커녕 인구 이탈을 막기에도 역부족이다. 그러나 지역의 장점과 특색을 한껏 살린 정주 공간과 환경을 조성하고, 일정 수준의 경제적·문화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힘쓰고, 낙후된 생활편의시설이나 교통 여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병행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문제는 예산이다. 지역 발전에 적합한 정책 사업 아이템이 있고 실행할 의지가 있어도 사업비가 없으면 공염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예산 투입 없이도 지역 사회의 수준이나 주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방법이 있다. 예산 탓만 하기 전에 `의식의 전환`을 두 번째로 제안한다. 불편이 곧 불행을 의미하지 않는 만큼 물질적인 불편함은 웬만큼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시민의식의 부재에서 오는 실망과 스트레스는 때로 지역을 떠나고 싶게 만든다. 
 도로가 갑자기 정체되어 사고라도 났나 싶어 둘러보면 그게 아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던 두 대의 차량 운전자들이 탑승한 채로 좁은 도로를 막고 회포를 풀고 있다. 또한 공공 도로가 사유지인 양 수확한 농산물을 내다널어 행인은 물론 통행하는 차량에 불편을 끼치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차가 귀한 시절에는 통했겠지만 지금은 시대가 확 바뀌었다. 그런데 의식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인 듯하다. 이제 사라질 때도 됐다 싶은 불편 가운데 하나는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또는 비 오기 직전에 생활쓰레기를 소각하는 것이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매캐한 연기에 황급히 창문을 닫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의식을 바꾸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당장이라도 고쳐야 할 관습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향 마을이 물속에 잠긴 수몰민이나 삼팔선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은 꿈속에서나 고향을 만날 거라 애달파한다. 타관살이를 하는 출향민은 멀쩡히 고향이 있지만 사는 데 바빠 마음처럼 가지는 못한다. 고향에 살건 고향을 떠나 살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정녕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게 고향이다. 고향이 그리울 때면 언제라도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게 고향이 천년만년 제자리에 남아 있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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