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인비`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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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인비`의 딜레마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10.26 15:34
  • 호수 8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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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칼럼니스트
이  현  숙칼럼니스트
이 현 숙
칼럼니스트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감과 애정 욕구,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 등 다섯 단계의 피라미드로 형태화했다. 그중 최하위 단계인 생리적 욕구는 생존이 달린 원초적 욕구로서 의식주와 연관된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은 사람과 동물을 살찌우기에 제격이다. 이맘때면 으레 계절의 풍요로움에 화답하듯 `천고인비`나 `천고마비` 같은 비유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시도 때도 없이 식욕을 자극하는 환경적 요인이 범람하고 있다. 지상파나 종합편성을 막론하고 경쟁적으로 방영하는 `먹방`이 대표적이다. 밥 한술 뜰 때마다 천장에 매달린 굴비를 쳐다봤던 `자린고비`가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TV 화면에서 펼쳐지는 음식의 향연에 `원 푸드 다이어트`는 깨끗이 포기할 것 같다.
 TV시청자에게 식도락 기행의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먹방` 프로그램의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방송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무작정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따라쟁이`를 양산할까 우려스럽다. 한국 성인 3명 중 1명이 비만으로 집계되는 만큼 탐식·대식을 미화하는 듯한 프로그램 구성은 개선되어야 한다. 음식 사진이나 영상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하고 식탐 본능이 발동하는데 직접 보고 냄새 맡으면 식욕 제어는 한층 힘들어진다. 불어나는 체중에 끌탕하지 않으려면 양껏 먹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 맞다.
 이제는 영양 결핍보다 영양 과다가 문제되는 세상이다. 비만은 고혈압·당뇨·고지혈증을 일으키는 주범으로서 질병으로 분류된다. 최근에는 `탕후루`라는 달콤한 간식의 유혹에 빠진 소아·청소년들의 비만이 사회적 논란거리를 낳았다. 살집 좋은 여성을 며느리감으로 선호하고 뱃살 두둑한 남성이 부러움의 대상이던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다.
 각종 `먹기 대회` 참가자들이 식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들을 쓸어 담을 듯한 기세로 흡입하는 모습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밥주머니(위장)` 옆에 `과일배`를 따로 관리하는 `과일 킬러`들이 그나마 이해될 정도다. 인체는 65%의 수분, 15%의 단백질, 14%의 지방, 미량의 무기질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곰이나 코끼리에 비하면 매우 작고 귀여운 인간의 몸속 어디에 그처럼 너른 저장 공간이 있는지 불가사의할 따름이다. 
 많이 먹어도 운동만 열심히 하면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나친 운동은 심장 근육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칼슘이 쌓이게 함으로써 심장을 석회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가 보고되었다. 운동으로 체중을 조절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것만큼이나 식욕 조절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빨리 떠나도 괜찮으면 본능대로 먹고, 오래 머무르고 싶으면 가려 먹어야 한다.
 무엇을 먹는가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누구와 먹는가도 중요하다.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반찬 한 가지뿐인 `일찬일식`이라도 부족함을 모른다. 차가운 겨울날에는 따끈따끈한 호빵 하나만 손에 쥐고 있어도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온 가족이 함께 밥상머리에 둘러앉아서 살을 다 파먹은 빈 게딱지에 남겨 둔 밥 한 숟가락을 넣고 꽃게찌개 국물을 조금 보탠 뒤 싹싹 비벼먹으면 그게 뭐라고 그리 맛나고 행복했다. 
 먹는 행위에도 중용과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다. 가급적 과식과 야식과 간식 횟수를 줄이고, 달고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삼가야 한다. 배를 꽉 채우기보다는 약간 아쉬울 때 수저를 놓는 게 낫다. 한쪽에서 비만과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한쪽에서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지구촌의 현실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 TV만 켜면 피골이 상접한 아프리카 아동들이 퀭한 눈빛으로 구호의 손길을 간절하게 호소하지 않는가.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 80억 인구 중 9% 이상이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다이어트나 건강상의 이유로 절식 내지는 단식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제로 칼로리` 음식을 한 가지 소개한다. 그것은 바로 애써 의식하지 않으면 있는 줄도 모르는 `공기`다. 혈액 내 적혈구가 산소와 영양분을 온몸 구석구석까지 제때 전달해 주지 않으면 그 즉시 생명체는 죽은 목숨이다. 허파 깊숙이 심호흡하는 것은 산해진미를 섭취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으니 어찌 보면 신선한 공기야말로 최고의 음식이다.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이 계절, 심신의 허증(虛症)이 중하지만 않다면 넘치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더러는 사색의 시간으로 허기를 달래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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